비가 오는 날이면 몸은 잘 깨지 않는다. 말짱한 정신을 붙잡아 두는 것 같다. 벌써부터 뼈마디가 시큰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나는 젖은 빨래처럼 늘어지면서 어디엔가 걸쳐 있다. 느지막히 등을 일으켜 바로 서면 잠시간 눈 앞이 아득해지면서, 세상이 핑핑 돌다가 균형을 잡는다. 힘없이 부엌으로 걸어가 물을 꺼내 마신다.
의식적으로 물을 마시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가 가는 지도 모르게 곯아버리고 만다. 그러면 또 어지럽기를 반복하게 되는 거고, 비틀어진 궤도를 돌면서ㅡ 창밖으로 보이는 축축한 거리를 바라본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우산을 쓰고 비를 가리려 애쓴다. 나는 안전한 방 안에 있으면서 그들보다 더 젖어 있다는 사실에 나의 나약함을 나무란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달의 고행을 결코 끝내지 못하고 이월시켰다. 빠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음을 알면서 생각할수록 생각은 더 많아진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걸 알아도 계속 자책한다. 우울한 내 모습보다 밝은 모습을 좋아할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누구도 그런 기대를 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면 쓰고 어지럽다. 눈 앞이 흐린 것은 여전히 똑같다.
눈이 나빠진걸까 싶어 안과를 가야 하나 하다가 안경을 새로 맞췄는데, 과하게 교정한 탓인지 나중에 다시 끼니 어지러웠다. 나는 어떤 세상을 보고 싶은 걸까. 이래나 저래나 어지러운 눈을 비비고는 생각을 멈춘다. 출근길을 나선다.
걷는 것과 사고하는 것이 슈퍼태스킹의 관계라 서로가 활동에 도움을 준다는 어느 과학자의 말을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방향을 향해 걷는 다리와 동시에 머릿속 전기신호도 열심히 걸어다닌다. 번쩍이듯 떠오르는 생각들 중 현실적인 쓸모가 있는 것은 드물다. 대개 일어나지도 않은 일, 부정적 상태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대부분이다. 애써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떠올리는 단어조차 골라낸다. 뇌는 '못하다'라는 부정을 인식할 수 없어서 긍정적인 단어를 생각하라고 했기 때문에 시도해보는 것이다. 나 정도면 행복한 편이지. 하며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