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상복을 입었다.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아주 먼 곳으로 보냈다. 생전 모습 그대로, 그녀가 자주 바르던 뽀얀 파우더가 칠해진 채로 곱게 누워 있는 모습이 그냥 잠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의사가 마지막으로 고인의 손과 얼굴을 만져 보아도 된다고 하기에 마지막 손길을 건넸다. 그 때서야 죽음이 내 현실로 한 걸음 들어왔다. 손 끝에 감각이 생경해서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닿은 온도만으로 다른 세상으로 영원히 떠나버렸다는 게 느껴져서 참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죽음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실감나지 않는다. 닿아도 닿을 수 없는 느낌을 피부로 체험하고 나서야 인정하게 되는 영역인 것이다. 그리고 한 단계 더 깨달았다. 죽음은 논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장례식을 치르면서 듣고 싶은 말을 듣기도 듣지 못하기도 듣고싶지 않은 말을 듣기도 듣지 못하기도 했다. 이기심과 욕심을 보았고 인내심과 동정심을 보았다. 진심으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상대를 탓할 수 없는 무관심이었다. 그것은 지난 나의 무관심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삼십 년 가까이의 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충격이었다. 행동하는 관심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도 느꼈다.
그런 충격의 3일을 보낸 이후 나는 계속해서 괜찮아지고 있다. 괜찮아지고 있다는 게 미안할 만큼 괜찮아서 스스로 서운할 정도다. 어쩔 수 없이 모서리 끝 가끔 튕겨나갈 때가 오면 숨겨져있던 감정이 불어난다. 기억상실이 있지 않는 한 계속해서 겪어야 할 것 같다. 그 빈도가 줄어나가는 것이 괜찮아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생의 존재들에게는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행스럽게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날도 그녀를 만났고 손을 잡았는데도 이 정도의 영향을 받았는데, 요즈음 밖의 세계에선 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을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준비도 할 수 없는 이별을 겪는다. 나는 감히 그들이 살아왔던 지난 모든 괜찮았던 날들이 꼭지점이 되어 무한히 튕겨져 꼬인 시공간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그 곳에서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흐를 것이라고도 말이다. 결국 비슷한 아픔을 겪은, 혹은 겪게 될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각자의 사랑을 한 움큼 나눠주는 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해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보다는 머릿 속 한 켠에 그들을 위한 국화꽃을 한 송이 심어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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