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 안에는 제3대구치, 사랑니 네 개가 귀퉁이마다 박혀 있다. 네 치아 중 가장 골칫덩이인 녀석은 오른쪽 아래 사랑니인데, 매복인데다 아주 90도로 누워 있어서 옆의 이를 밀기 때문이다. 치아교정을 한 이유도 이 녀석이 유발하는 치통 때문이었는데, 당시에는 이게 잇몸 이불을 단단히 덮고 있었던 터라 애꿎은 생니 4개를 뽑기도 했다. (원체 잇몸 면적이 좁은 데다, 짝을 맞춰서 뽑아야 했었다) 치아를 뽑는 것은 상당히 언짢은 기분을 준다. 마취 주사를 맞아 턱이 뭉근하고 얼얼한데도 의사 선생님이 힘을 줘서 내 치아를 당기는 느낌이 들 때, 초록 천과 의료용 스텐 위에 놓여진 벌건 내 뼛조각을 볼 때, 지혈하느라 꾹 물고 있던 거즈가 피를 더 흡수하지 못할 때, 밥을 먹을 때 밥알이 제 자리인 양 들어가려 할 때 그렇다. 가장 사용성이 적은 치아라고 해서 각 송곳니 뒷 자리의 치아 네 개를 뽑았었는데, 옆으로 누운 그 녀석보다 사용성이 적을까! 교정이 끝나고 비좁던 배열이 나란해지고 나니 이 애물단지가 바깥 세상이 궁금했었나 보다.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금니와 딱 붙게 되었다. 더 이상 치통이 있지는 않았지만, 옆으로 누워 있던 탓에 치실을 할 때마다 잇몸을 말 그대로 조져 놓게 되어서, 뽑아야지, 뽑아야지 하면서만 몇 년을 지냈던 것 같다. 그 문제의 치아를 드디어 뽑을 결심을 했다.
누워있던 아래 사랑니와 다르게 윗 사랑니는 바르게 났는데, 선생님께서 뽑는 김에 둘 다 뽑는 것을 추천해주셔서 그렇게 했다. 마취가 잘 되어서 그런가 뽑는 것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놀란 것은 윗 사랑니는 전혀 느낌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운지 30초만에 '잘 뽑혔어요~' 라고 하시기에 당황했는데, 역시 아랫니는 20분이 넘게 걸린 듯하다. 다행히 신경도 건들지 않고 성공적으로 뽑아내어서 사랑니 발치 하나도 무서울 것 없군. 하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다음 날 싹 사라졌다. 당일 마취가 풀리고 나서도 아프지 않았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잇몸이 부어서 너무 아팠다. 이별의 후폭풍 같았다. 몇 주 차이로 사랑니를 먼저 뽑은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사랑니 이름 값 한다고 생각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어도 아픈 데에는 그리 잘 들지 않아서 힘들었다. 그런데 한 삼사일을 그렇게 쓰리더니 거짓말처럼 고통이 줄었다. 10 정도 아팠으면 2까지 내려간 기분이었는데 금방 0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첫 사랑니의 고통이 끝나고 가뿐하게 출근한 날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이야기하는데, 애인과 안 좋은 상태라고 하길래 왜 그러냐 물었다. 연애 고민에서 흔히 들을 법한 문제들이었다. 결이 다른 것 같다, 잘해주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자주 싸우게 된다, .. 좋은 말을 해 주고 싶긴 했지만 되려 확실하게 헤어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빨리 헤어질 수록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뭔가 내가 경험형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싶지만, 나의 데이터베이스로는 그런 인연은 빨리 정리하는 게 낫다. 물론 그런 걸 다 이겨내가면서 만날 수 있겠지만 일방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사랑니 같다. 언제 속을 썩일지 모르는 상태로, 아니면 이미 썩어 있는 상태로 박아 놓기 보다는 잠시 아프더라도 뽑아내니 후련하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끝날 걸 아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미, 스스로가 문제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사랑을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하는 사랑과 많이 다르다. 같은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어떤 것은 바르고 어떤 것은 곪고 또 어떤 것은 숨는다. 나는 내 사랑이 점점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전의 것은 지금보다 바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상대도 나도 많이 어렸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전에는 주로 내가 받고 싶은 것들을 상대에게 하면서 왜 너는 나와 같지 않은 거야, 탓하니까 싸우게 되고, 기대하고 실망했다. 그가 원하는게 뭔지 내가 원하는게 뭔지 궁극적으로 잘 알지도 못했다. 알게 되어도 내가 내키지 않으면 또 그게 문제가 되어 둘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렇다고 지난 이들을 지금 다시 만난다고 해서 내가 '좋은' 사랑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동료의 말처럼 '결이 다른' 것도 있으니까, 결국 사랑니 같은 거니까. 그래도 내게 있어서 사랑니 존재의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한다면 남은 치아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사랑니 뽑지 않았으면 너도 썩을 뻔 했겠다. 어금니를 조금 더 아끼게 된달까.. 자른 잇몸에 새살이 차오르는 걸 느끼면서.
아무튼 사랑니 한 번 뽑는 데 이상한 생각들을 막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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