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무화과를 좋아했다. 여름에 태어나서, 여름을 좋아해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그녀는 7월께가 되면 시장에서 사 온 작은 무화과 상자 한 통을 며칠 동안 나눠 먹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참 당신 같은 것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는데, 건조한 듯 은근한 윤기가 도는 오래된 비단 같은 피부가 그런 느낌을 처음 떠올리게 했다. 생과일 상태에서도 다른 것들에 비해 말린 느낌이 나는 그 특유의 질감이 세월에 점차 야위어 가는 그녀의 모습과 더 닮아 보이기도 했다. 알고 보니 무화과의 꽃말*도 그녀에게 아주 잘 들어맞는 키워드였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만큼에 가깝게 출산을 하고 또 발가락까지 세어야 할 만큼의 육아를 했지만, 그녀는 나를-내 생각이 아니라 진짜 나를-제일 사랑했다.
나는 그녀의 거의 마지막 육아 대상자였다. 그녀는 내게 엄마보다 엄마 같은 사람이었고 단짝이었다. 우리는 내가 십대 끝자락이 될 때까지 두명이 누울 수 있는 방 안에서 한 이불을 덮고 지냈다. 방의 왼쪽에 문이 있었고 그녀는 간밤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보통은 내가 오른쪽에서 잠을 잤다. 그녀는 이유가 불분명한 두통을 자주 앓아서 내 쪽으로 돌아눕지 못했는데, 내가 잠에 바로 들지 못하고 있으면 오른손으로 내 이불 위를 토닥여주었다. 그러다 심장에도 고질병이 있던 그녀가 숨을 쉬기 힘들다며 무릎을 꿇은 모양으로 베개에 이마를 대고 밤을 보내는 날이면 내가 그녀 쪽으로 돌아누워 오른손으로 등을 토닥이곤 했다.
내가 그 방이 좁다고 느껴질 만큼 자라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방을 나왔다. 가끔 그 방에 돌아가면 늘 그녀의 손이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해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의 손이 자꾸만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가벼워지다가 어느 순간 다 사라져버릴까봐 나는 매번 그 손에 봉숭아물을 들이거나 매니큐어로 그림을 그려 일종의 방명록을 남겼다. 그리고 내 손에도 같은 물을 들여서 그녀도 나도 그 색이 옅어지는 정도를 보고 떨어진 시간을 가늠했다. 지금은 그 방명록을 다시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이 한 뼘씩 늘어나서 지금 내 손톱은 바짝 깎여 짧기만 한 채 옅은 윤기만 빛내고 있다.
점점 내 손이 그녀의 손을 닮아 가는 것을 느낀다. 등을 두드리던 손으로 기타를 치고 방명록 대신 노랫말을 쓴다. 내 삶에서 가장 더웠던 여름을 막 보내며 제철이 지나기 직전에 무화과를 먹어 본다. 물렁하고 밍밍한 과육을 마시듯 넘긴다. 마음 안으로 그녀와 나, 우리를 위한 꽃을 심는다.
*다산, 풍요, 깊이 간직한 마음 등의 의미를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