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이 지나고 사촌언니로부터 출산 소식을 들었다. 딱 설 당일에 태어나서 신기한 아이. 이제 막 태어난 조카의 이름은 태린이다. 남자아이의 이름으로 잘 본 적이 없는 데다가 외자여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아이는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맞이하는 첫 번째 조카가 되었다.
사실 내게는 이미 세 명의 조카가 있다. 친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18살.)나서 초등학생 때 부터 꼬마 이모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것. 벌써 대학생 조카를 둔 이모가 된 나는 이 아이들과 거의 같이 자랐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직도 이모라는 호칭 대신 누나, 언니라고 잘못 부를 때 웃기다. 아마 이 애들도 나를 사촌언니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들이 마냥 어린 조카 같지만은 않고, 조금 더 어린 사촌동생 즘으로 느껴지기는 하니까.
내가 외가와 왕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 이모라는 단어가 그렇게 가깝게 생각되지 않았다. 나도 이모가 한 분 계시긴 한데, 워낙 오래된 기억들 뿐이라 그런지 이모를 떠올리면 그냥저냥 오묘한 기분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이모가 엄마와 무척이나 닮아서 어린 내가 신기해했던 장면이다. 이모를 보면 엄마가 같이 떠올랐는데, 혹시 내 조카들도 나를 보면 언니가 떠오를까? 아니면 언니를 보면 내가 떠오르기도 할까? 이름도, 성격도, 키도 얼굴도 비슷한 구석이 없는데도 그럴까? 나는 조카들에게서 언니의 얼굴을 본다.
나보다 더 엄하게 컸던 언니는 나와 다르게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아이였다고 했다. 엄마가 된 언니는 그렇지 않다. 형부보다 카리스마 있게 애들을 키운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이십에서 삼십대로, 언니가 엄마가 되는 과정 속에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변했을까? 언니의 아이들이 언니의 말에 순순히 수그러드는 것을 보면서 또 내가 보지 못한 언니의 어린 시절이 보인다. 언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릴지 궁금해졌다. 이렇게 자식은 부모를 닮게 되는 걸까, 하다가 나는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20대의 나는 그 과정에 있는 듯하다. 생각해본 적 없던 '아이'를 그려본다. 반쪽짜리 얼굴은 사진첩에 있는 나의 아기 때 사진과 비슷하다. 아직은 감히 상상하기 벅차다. 수년 후에, 아이는 존재하고 있을까? 부모님들이 말하는 '너 같은 아이 낳아봐라'는 말을 이해할 날이 올까?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이라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냥 멀게만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 아직도 멀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종종 떠올려보게 된다. 나도 언니같은 엄마가 될까? 또 아이는 나와 언니를 닮았다고 생각할까? 그리고 나는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게 되는 걸까?
20년 가까이 되는 나이 차이만큼 가족들도 20년 동안 변했기 때문일까, 비슷하긴 한데 꽤 다르게 길러진 듯하다. 같은 사람들과 지냈지만 가지고 있는 건 서로 다른 기억들. 그들에게도 언니와 나는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여겨지고. 친하지만 친하지 않기도 한 요상한 사이가 된 것 같다.(사실은 .. 내 생각만 그럴 지도 모르겠다. 언니가 알면 서운해할까? 솔직하게 미안해.) 그래서 열 살도 되기 전에 만난 조카들과 어색한 채 십수년을 지냈던 건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언니와 조카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이제야 통상 '이모'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사촌언니의 아이가 더 조카스럽게 느껴진다. 아니면 이 나이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아기에 대한 애정이 더 샘솟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으려나 싶기도 하고. 저출산이 문제라는데 내가 아는 결혼한 여자들은 대부분 아이가 있다. 사촌언니들도 모두 그렇고, 친구들도, 언니들도 그렇다. 요며칠 사이에만 해도 또 한 친구가 아기를 가졌고 한 친구는 만삭이 되었고 다른 사촌언니가 다른 아이를 낳았다. 아이 낳는 것을 선택한 내 주변 사람들은 행복해서 그런 결정을 한 걸까 의문이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아니다. 다만 행복할 수 있는 경우를 늘린 것은 맞는 것 같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같이 늘었겠지만 절대적으로는 그렇다. 암담한 요즘 뉴스들 사이를 헤매다 잠깐 눈을 돌리니 주변의 희망이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가끔 내면의 변화가 새삼스레 느껴진다. 4월은 사랑에 대해 자주 생각했는데 그 때 그랬다. 괜히 혼자 뿌듯하다. 소중한 누군가를 볼 때에는 빛을 많이 내뱉는 것을 떠올린다. 요즘은 더 숨어들고 싶지 않다. 곱씹을수록 세상에는 그 단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느끼게 됐다. 걱정이 아닌 상상으로 자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안도감이 들었다. 지난 주 병원에서도 5월부터는 약을 줄여 보자고 했다. 마침내 만난 하강곡선이, 우울하지 않은 내가 낯설지만 반갑다. 용기내서 사랑을 말해도 봤다. 후회 대신 감사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슴 속에 놓아둔다. 늘 푸념하듯 늘어놓았지만 작년 오월과 다르게 올해는 명랑할 것 같다. (또 사실 자주 명랑한 편이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잊어버렸는데, 상관 없을 것 같다. 태어나는 아기들처럼 내 속에도 새 마음이 머리를 내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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