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불은 나에게 얄팍한 대피소였다.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매번 자는 척을 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아주 티가 났을 것 같다. 털 끝 하나 나오지 않도록 온 몸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때 덮던 이불은 내가 몸이 더 작았던 때에, 그러니까 예닐곱 살 즈음, 덮었던 하얀색에 검은 문양이 그려진 얇은 누빔 이불이었다. 한창 이불 속에 몸을 숨기고 싶어했던 때는 초중학교를 다닐 무렵이었으니 당연히 무릎담요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외로운 인생이었지 않겠느냐고 십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 나는 아버지를 참 싫어했다. 그가 내게 풍기는 소주 냄새와 반복해서 내뱉는 마디마디를 피하고 싶었다. 쉰의 아버지는 열 살의 나에게 쾌쾌묵은 옛날 이야기부터 당신이 죽고 없을 수십 년 후까지, 동이 틀 때까지 이야기하고는 했다. 지겹기만 했더라면 숨지는 않았을텐데.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좋았을 나는 언젠가 어른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그들의 입장을 모두 아는 사람이 되었다. 종종 아버지의 한탄과 후회의 화살이 나를 향할 때도 있었는데 나는 그 일을 피하기 위해서 내 모습을 감추고 싶어했던 것 같다. 내 얼굴과 표정을 보면, 내 손발을 보면, 내 머리카락을 보면 뭔가를 더 생각나게 할 것 같아서 그랬다. 한여름의 열대야에도 이불 덮어쓰기는 사라질 수 없었다. 귀를 막아도 부정은 땀과 함께 흘러들어왔다. 아버지도 사람이니까 힘든 게 당연하다고, 모두가 불쌍한 것 투성이라고. 그래도 나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내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어린 나는 바락바락했다. 알고 있지만 듣고 싶지 않을 말들을 나도 마구 내뱉었다. 내 상처를 모두 기억하는 건 나 뿐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조금만 더 고분고분했더라면 덜 후회했을까 싶다. 자신의 진짜 행복을 아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었다면 더 빨리 알았을텐데. 어차피 지나갈 순간들임을 알았더라면 기꺼이 웃어줬을 텐데.
집을 나온 지 이제 이 년이 되어 간다.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거리가 생겼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원진살 같은게 있는지 온전히 편안하기는 어렵다. 미약한 억울함이 들러붙는다. 한 번 들어찬 양가감정은 쉽게 사라지기 힘들다. 천륜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그들을 걱정하는 나를 보고 사랑의 한 면이라고 생각해본다. 생로병사의 굴레는 모두가 벗어날 수 없다. 그 말의 가운데에 놓인 아버지를 본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 내가 떠오르고 아버지도 죽음을 생각하면 나를 떠올린다. 아버지의 어머니도 그랬지만 그녀는 요즘 죽음을 더 많이 떠올린다. 자꾸 죽음을 말한다. 점점 그녀를 잃어가는 느낌이 든다. 내가 둘러싼 이불 옆을 토닥거렸던, 나와 한 방을 같이 썼던 그녀가 이제는 같은 방에 홀로 웅크려 있다. 돌아가지 않는 나는 나를 탓하고 과거를 탓하고, 이불 조각을 한웅큼 쥐고 있는 듯하다. 이불 밖의 아버지도 사라진 지 오래다. 더 이상 이불이 필요 없지만 그 때처럼 웅크리고 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멀리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 나와 닿아 있다. 질병, 죽음, 이별, 좌절이 왼 쪽에 있고 웃음과 행복, 보람과 사랑이 오른 쪽에 있다. 모두 가지고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꽤나 간사한 사람이라 어떤 마음들을 두고도 좋아하고 싫어하기를 왕복하는데 그냥 그게 한 덩어리임을 인지하고 나니까 이십 몇 년치의 감정들이 이해가 됐다. 자는 척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이 오면 자고 정신이 들면 깨어나고, 매일매일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어렵게 돌아왔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듯이 멀리멀리 돌아가는 길은 멀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최근의 공연에서 처음으로 이 노래를 불러 봤다. 매번 해볼까 말까 고민하다 뺀 곡이었는데 나름대로 도전이었다. 게다가 아주 오랜만인 솔로 공연이라 더 그랬고,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려움은 늘 맞서고 나면 나름의 길을 찾아간다. 어쩌면 내가 어떤 노래를 하든 상관 없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가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나이면 되는 거잖아? 술 냄새도 나지 않는 밖이 무서워서 웅크리고 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이불 속에 땀이든 눈물이든 그만 채우련다. 우울한 곡이지만 이제 가둬두고 싶지 않아서 데모로 녹음해뒀던 본을 올렸다. 이제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꽤나 많이 한 것 같은데, 늘 비슷한 정도만 풀어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읽는 이들에게 혼선을 줄 것 같다. 의식의 흐름대로, 공상하듯 읽어 주면 좋겠다. 생각이란 건 명확한 언어로 풀어내지 않아도 흐름이 있는 법이니까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짧은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고쳤다가를 반복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하는 것과 다르게 손과 눈과 머리 속에 남아서 망각하는 것을 막아 준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적어도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아서, 부끄럽고 이상한 글이라도 남긴다. 곡도 그렇게 쓴다.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남겨 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