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초등학교 내내 친했던 친구의 생일이었다. 같은 아파트 한 라인에 살았던 터라 늘 서로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 친구도 좋아했지만 그 집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친구같고 단란한 엄마와 아빠,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와 푹신한 침대,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스팸, 용가리, 시리얼 같은 것들이 그랬다. 고소하고 따뜻한 집이었다. 계단을 10층 내려가면 나오는 집의 온기가 그리 따뜻한 것은 내가 높은 층에 살고 있어서,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20년이나 지난 순수한 동경심이었다. 우리는 신기하게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아니 2학년 때 있었던가, 아무튼 그는 내가 단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던 것 같다. 나와 같이 빠른 년생이었던 그 친구의 생일은 기억하기 쉬웠다. 발렌타인데이었거든. 초콜릿 하나와 번쩍이는 유광 포장지에 감싸진 선물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도 같은 반은 되지 않은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사귀면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친구가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몸이 멀어지는 만큼, 머리가 크는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 만났을 때마다는 서로의 결이 꽤나 달라져 있어서 놀랐고. 그래도 그 애의 생일은 떠올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드디어 그게 희미해져 버렸다. 물론 발렌타인데이라는 것도 편의점에 붙은 전단을 보고 난 후에 알았지만, 그걸 알고도 그 친구의 생일을 연상하지 못했다는 걸 며칠 뒤에야 깨달아서 놀란 것이다. 내게는 그 두 가지가 일종의 세트였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멀어질수록 그 사람에 대해 잊어버리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완전하게 과거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 늘어가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진 ..
‘잊어버림’이라는 단어가 여실히 와 닿는다. 그리고 이런 일을 감정적으로 되새김질 하던 내가 이전보다 무딘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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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한 편 봤다.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한 중년 남자가 주인공이다. 멀쩡한 신사 같은 차림의 그는 오랫동안 시청 공무원으로 일해오다 어느 날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6개월 남짓한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고뇌하고 실천하는 내용이 담긴, 어디서 많이 접해본 듯한 소재의 영화였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본 영화가 아니었는데도 보는 내내 무언가 떠올라서 결국엔 감화되어버렸다. 주인공 남자에게서는 우리 아빠가 보였다. 실제로 아빠는 예전에 양복에 중절모를 자주 썼었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꼭 영국 신사 같다고 했었고 그 말이 주인공 배우를 보면서 느껴졌다. 클로즈업 되었을 때 보이는 눈가의 주름, 세월에 굳어버린 얼굴 표정, 토해내지 못하는 묵은 마음을 보았다. 타자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할 때 이해는 두 배가 된다. 외모가 닮은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그 인물이 처한 상황이 상당 부분 우리 아버지같아 보여서 더 이입되었다. 자꾸만 끝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상황도. 사건은 사람을 변화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서도 있겠지만 요즘 아버지는 많이 변화했다. 충분히 다정하고 즐기고 편안하기에도 부족한 것이 인생이기 때문일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으로 행복하려 하는 듯 하다. 어떻게 살겠어요? 영화가 나에게 그렇게 질문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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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가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와 이야기하다 대구에 계신 고모부가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셋째 고모의 남편인 고모부는 맏아들인 우리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지만 늘 존대어를 쓰시고, 청바지를 즐겨 입으시는 쾌활한 분이셔서 나도 잘 따랐다. 대구에서 공연할 때 시장에서 꽃을 사다 주셨던 기억, 우리집에 손볼 곳이 생기면 아빠보다 먼저 나서서 뚝딱뚝딱 해결해주시던 기억이 나는, 내게는 고마운 분이다. 조만간 병문안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쉬는 날 일정을 봤더니 다음 주에나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내일 고모께 안부 전화라도 먼저 드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는데 문자가 와서 스팸 문자 겠거니 무심코 메세지함을 열었는데 당황스러운 글자가 떠 있었다. 고모부의 부고 문자였다. 몸이 안 좋으시다는 게 이렇게도 빨리 일이 날 줄은 몰랐다. 곧바로 대구로 가는 차편을 예매했다. 하필 저녁 8시는 되어야 퇴근할 수 있어서 시간 여유가 없었지만 다행히도 가까운 시외버스 차편이 적절한 시간대에 있었다. 그 날 비가 왔는데 우산을 챙기지 못한 상황이 꼭 고모부께 마지막 인사도 못 드린 것의 복선처럼 느껴졌다. 마침 그 날 모든 옷을 검정색으로 입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고모네 식구들을 만나고, 껴안고 ㅡ..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빠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덩달아 생각이 많아지는 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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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자필멸,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하였다. 기억하는 것이 있으면 잊는 것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것은 멀어졌고 멀리 있다고 여기는 것은 가까이에 있다. 반대의 것을 떠올려보는 습관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물음을 내 안에 던진다. 물음은 닻이되어 아래로 쭉 내려간다. 어두울 것이라 여겼던 것은 에테르가 없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존재하더라도 매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슬프고 부정적이고, 허무함 그 자체일지도 모르는 인생을 긍정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2월이다. 그러니 니체가 떠오른다. 차갑고 마른 바람에 2월이 영원할 거라고 속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