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의 것들은 낯설기도, 두렵기도, 과히 생동적이거나 지독하게 무덤하기도, 때로는 완벽한 분리감이 들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그렇게 내 안에 있는 것들은 내 밖에 존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지난 물음에서 내 존재의 끝 지점이 어디까지인지를 더듬어보다 보니 어느새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내가 이 거대한 자연 속에 한웅큼의 생으로 실존한다면, 과학이 아직 단언하지 못하는 내 머리 속 수많은 전기 신호들의 스침 또한 지극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 것이다.
물론 이 실감의 끝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갈수록 느껴지는 교훈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일이 일종의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려나.
일상반경 속에 점점 더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은 안도이자 지루함이 된다. 설레임은 줄고 웬만한 일에 동요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이 상태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슬픈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어떠한 감정들에 대해 충분히 그래도 되는 순간들이 선명해지는 기분에 더 솔직해지는 느낌이라. 종극에는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소중해지리라. 비록 그것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것들일지라도. 아직 소중하지 않은 감정이 있다면 그건 나의 인생을 꽝이 없는 뽑기 게임처럼 느끼게 할 것 같다. 그 불안정한 구석이 스스로 인생을 관전하는 자에게는 가장 자극적인 순간일 테니까.
나를 아는 이들이 내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꽤 자주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자아인 것 처럼 느낀다. 어쩌다 나의 페르소나를 마주하는 순간에는 과거가 아니라도 그렇게 된다. 어떤 상황마다의 역할이 있는 걸까, 상대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나를 누구는 거울 같다 말했다. 거울의 본질은 무엇을 비추는 것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누군가를 비출 때는 내가 그 앞에 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 거울의 눈을 감으면 비춰지는 상대도 없다. 그냥 유리 한 면이 되어 차갑고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대개는 빛이 나를 비추기 때문에 나도 빛을 내는 일들이 많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선. 누군가 나를 비춰준다면 그 또한 감사하고 따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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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생일의 기억은 지금까지 딱 두 번 있다. 봉사활동 기간과 겹쳐 단원들이 급식소에서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줬던 날이 그 첫 번째 날이고 두 번째는 바로 며칠 전, 이번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첫 번째는 조금 특이한 상황에서의 기억이라 상대적으로 잘 남아 있었는데, 이번 생일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의 1월 31일 중 가장 특별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기 때문이다. 별 다를 것이 없어서 더 특별했다. 자주 걱정하던 것들에서 해방된 하루였으며, 모든 것이 편안하게, 나를 누르는 것 없이 온전한 행복감을 느껴도 된다고 생각이 드는 몇 안되는 날 중 하나였기 때문에. 내가 먼저 비추지 않아도 나를 비춰주는 거울들이 있었기 때문에. 두 거울이 마주하면 선은 끝없이 반복되지. 정확한 행복의 각도, 평행선을 체험한 것이다.
선물들은 나를 가득 비춘 만큼 편안한 감동을 가져다주었다. 자음과 모음에 진심을 담은 편지들은 내 세계를 확장한다. 이제는 더 이상 선물에 대해 미안함을 갖지 않는다. 어련히 그럴 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마음에 삶의 의지를 더해 나의 거울을 깨끗히 닦아낸다. 더 맑게 비추기 위함이다.
며칠 축축한 날들이 연속되고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았다. 마저 돌리지 못한 빨랫감 뭉텅이를 보고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것은 매일 비가 올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나의 고질적인 손목 통증이 더 저릿하게 느껴질 것도 이제는 안다. 해가 뜨면 괜찮아질 것을 알기에 비 오는 날을 기꺼이 맞이하고 매일의 눈을 뜬다.
신지와 카오루, 싱클레어와 데미안, 예수와 요한, 구도자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하나의 생으로서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지도를 만드는 사람처럼 한걸음 한걸음 걸어보아야 알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그 기준이 될 작은 깃발을 꽂은 느낌이 든다. 지구는 둥그니까, 막다른 길은 없을 거야. 일단 오늘의 첫 걸음은 .. 마른 빨래를 걷는 일!
나의 생일을 자축하며,
차곡차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