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는 어 디 까 지 입 니 까 // 종종 이상한 생각이 든다. 어떤 기분이 들면 그것이 내 안에서 솟는 것이 아니라 얼마간의 공간을 두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서다. 누군가와 장난을 치며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할 때나 시덥잖은 이야기에 눈이 조금 풀린 채 별 의미 없는 맞장구를 칠 때에, 혹은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낄 때까지, 모종의 기분 포자가 나를 둘러싼 느낌이 든다. 가끔은 그게 이물질인 듯 알러지가 일 것만 같이 낯설고 불편하고 참기가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기분 포자가 퍼지는 것을 막으려 애쓴다. 포자의 독을 주변 사람들이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독이 강한 포자에 휩싸이면 나도 모르는 기준으로 편을 나누어 포자를 퍼트린다(대개 화, 예민함 같은 것들이 해당한다). 인지하는 순간 후회한다. 내가 나와 내가 아닌 편을 나눈 그 기준이 무얼까를 포자가 나타날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나'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일까. |
|
|
1. 발음부터가 모호한 느낌이다. "나,나." 몇 번 곱씹어보면 입천장에 혀가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는 동작이 의식된다. 나는 '나'가 한글 자음 중에 가장 내기 쉬운 소리라고 생각하는데, 공기를 가장 적게 쓰면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연스러운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아'나 '하'와도 고민했지만, 왠지 그것들은 모음과 더 가까운 자음이라고 느껴져서 '나'로 생각을 굳혔다. 한글 자음에서 두 번째에 위치한 것은 에너지가 강한 첫 번째 자리를 다른 자음에게 한 발짝 양보해 준 느낌이라서 마음에 든다. 나를 계속해서 발음하다 보면 부드럽고 말랑한 분위기가 연상된다. 겉면이 있는 듯 없는 듯 외부와의 상호성이 좋은 느낌, 나는 '나'에서 그런 걸 떠올린다. |
|
|
2. 최근 어떤 외국 뇌과학자의 경험에 대한 영상을 봤다. 샤워를 하던 중 갑작스런 현기증에 욕실 벽을 짚었는데, 그 순간 벽과 자신의 몸이 구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건 좌뇌의 한 부분에 출혈이 생겨서 나타난 기능적 문제였지만, 그는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초월감을 경험했다고 했다. 물론 이것을 겪기 위해 뇌에 출혈을 만들자는 말은 아니다. 그가 이야기한 벽은 물리적인 벽에 국한되지 않는 것 같았다. 짧은 일화에서 내가 사념하게 된 것은 '벽'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그가 말했던 '초월감'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뇌 이상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런 초월감을 느낄 수 있을까? |
|
|
3. 벽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육체였다. 나 자신이라는 말에 몸과 마음을 동시에 떠올렸다가, 마음은 때때로 내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어서 따로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나는 좌뇌에 이상이 없어서 어디까지가 내 손인지 정확하게 구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마음은 다르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감화되고 영향을 받는다. 무엇이 나만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구별하기란 어렵다.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통제하는 것도 거의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동태를 의식 하에 두는 것도 굉장한 에너지가 들 것이다. 내 안에는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불편하게 느끼는 마음, 미운 마음, 어쩔 수 없는 마음, 합리적인 마음까지 너무나 많은 마음이 존재하지만 결과값은 하나로 나오게 된다. 모든 마음을 뭉그러트려서 하나의 마음을 만들고 싶다. 나의 진짜 자유된 마음, 내 안의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찾아야 그 마음을 알아볼 수 있다. 내면의 초월감을 느끼게 되면 바깥으로 향하는 것은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
|
|
4. 내 육체가 아닌 것들과의 벽은 어떤가 떠올려보았다. 인간부터 동물, 식물, 자연과 무생물들까지 쭉쭉 내려가는 생각이었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대개 나는 동경하는, 너무 다른, 신기한, 이해가 되지 않는, 낯선 대상에 대해 벽이 있음을 느끼는데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그 벽을 허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처음에는 내가 그들처럼 되어야 진정한 공감이 되고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건가 의문을 가졌는데 이내 그 문장 속에 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와 완전히 같아질 수 없을 뿐더러, 뇌 과학자의 경험과 비슷한 일을 겪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일체감을 향하는, 벽을 허무는 태도에 수렴하는 삶만 되더라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5.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향한다. 출근 시간대에 겹쳐 사람이 많이 탔다. 옆에 서 있는 여자는 향수를 아주 진하게 뿌렸고 또 다른 옆에 있는 남자는 비트감 있고 둔탁한 외국 노래를 최대 음량으로 듣고 있다. 내 앞엔 나와 같이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서 있다. 좌로 우로 열차가 이동할 때마다 쓸려다닌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다. 가방 안에 초콜릿이 들어있지만 꺼내 먹을 수 없다. 후각과 청각을 양 옆의 남녀에게 빼앗기고 시야는 찹찹한 공기를 머금은 외투와 잠이 덜 깬 뒷통수들로 가득 찼고. 일종의 마비가 다가온다. 출근길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일상적 순간에서도 나의 감각은 이렇게 쉽게 무력해지는데, 일생에는 얼만큼의 강력한 마비가 존재할까? 그리고 어떻게 그런 순간들을 잘 넘어갈 수 있을까? 탁한 눈의 무감각은 전혀 답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열차의 움직임에 함께 쓸려보기로 했다. 다 같이 갈대무리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해보았다. 다시 떠올려 보니 바보 공상가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나처럼 이상한 생각을 같이 할 지도 모르지. 이런 게 아주아주 조그만 일체감의 시작일 수 있다고. 서로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관계가 정말 재미있는데, 글을 쓰면서도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삼천포로 잘 빠지는 나는 나의 벽을 저 멀리로 보내버리기로 했다. |
|
|
붙이는 말
2023년도 어느덧 마지막 한 달을 남기고 있네요.
잘 지내시나요?
지난 한 달 동안 저는 몇몇의 크고 작은 마음들을 먹고 지냈어요.
지독했던 감기도 드디어 떨어졌고요.
얼마 전에는 귀한 부산 눈도 보고요.
겨울이 따뜻해서 걱정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서 좋네요!
엊그제는 새로 다이어리를 샀어요.
요즘에 종이에 글을 쓴지가 오래돼서 자주 끄적거리려고요.
다음 달에는 하던 걸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참, 그리고 고레에다 감독 신작 꼭 보세요. 저는 너무 좋았어요.
거기 나오는 아이들은 서로에게만큼은 벽을 허문 것 같더라고요.
여러분들의 벽은 어디 쯤에 있나요?
한 번쯤 떠올려보시길 바라며,
평안하고 자주 웃는 연말 보내세요. |
|
|
|